• 관성해수욕장
    경상북도 경주시 양남면 수렴리에 있는 해수욕장으로 1988년 개장하였다.
    백사장 길이 1.3㎞, 너비 30∼70m이다. 31번 국도가 해안가를 지나가며
    서쪽 삼태봉(三台峰) 아래 마우나오션리조트와 골프장이 있다. 현대자동차
    하계휴양소로 지정되어 매년 여름 가족 단위의 피서객들이 많이 찾는다.
    2009년 높이 2∼3m의 해송 160여 주를 식재하고 원형 펜스와 안내판,
    계단 블록 등을 설치하여 새롭게 단장하였다.
  • 주상절리
    단면의 모양이 육각형, 오각형 등 다각형으로 긴 기둥 모양을 이루고 있는
    절리를 말한다. 화산암 암맥이나 용암, 용결응회암 등에서 생긴다. 제주도
    해안에는 기둥 모양의 주상절리가 절벽을 이루고 있으며, 정방폭포와
    천지연폭포가 이런 지형에 형성된 폭포이다.
  • 불국사 다보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0.4m, 기단 폭 4.4m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의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탑으로,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두 탑을 현재와 같이 동서로 나란히 세운 까닭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法華經)》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기단부에는
    사방에 보계(寶階)를 마련하였고, 보계에는 난간을 가설하였던 석주가 남아 있다.
  • 불국사 석가탑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8.2m로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동서로 세워진 두 탑 중 서쪽에 있는 탑이다. 탑의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釋迦如來常住設法塔)'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
    이라고도 한다. 두 탑을 현재와 같이 동서로 나란히 세운 까닭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法華經)》의 내용에 따른 것이다.
    이 탑은 탑주(塔周)에 연화(蓮花)무늬를 새긴 8개의 둥근 돌을 돌려 경계를
    삼았는데 이것이 팔방금강좌(八方金剛座)이다. 기단은 2층을 이루고 상하에서
    탱주(撑柱) 2주(柱)로 알맞게 면석(面石)을 구분하였다. 제1탑신 이상은 탑신과
    옥개(屋蓋)를 각각 1석(石)으로 쌓아올렸는데, 기단의 높이와 탑신이 서로 상하에서
    알맞게 조화되어 안정된 느낌과 아름다운 비례를 보여준다.
  • 불국사 연화교, 칠보교
    불국사 앞면 석축 동쪽의 청운교·백운교에 대하여 서쪽에 연화교·칠보교가 있다.
    경덕왕 때 김대성이 중창했을 때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1974년 중수할 때에
    돌간대를 다시 끼워 옛모습을 재현시켰다. 극락전 영역의 중문인
    안양문에 오르기 위한 계단이다.
  • 석굴암
    통일신라시대에 경주 토함산(吐含山)에 세워진 한국의 대표적인 석굴사찰이다.
    신라인들의 신앙과 염원, 뛰어난 건축미, 성숙한 조각기법 등을 보여주는 역사
    유적으로 국보 제24호로 지정되었으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도 지정되었다.
  • 경주월드
    경주 시내에서 10㎞ 떨어진 보문관광단지 안의 호숫가에 있다. 1985년 5월 부지
    면적 25만 3,000㎡에 도투락월드라는 이름으로 국내에서 놀이공원으로는 두 번째로
    개장하였고, 1992년부터 경주월드로 상호를 변경하였다. 2000년 초부터 대규모
    투자를 단행하여 지금의 종합 휴양 레저시설로 변모하였다.
  • 신라밀레니엄파크
    2007년 3월 30일에 문을 열었다. '신라'라는 주제로 꾸민 복합 체험형 역사 테마파크로,
    크게 6개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지상·수상 무대를 갖춘 1,500석 규모의 주공연장과
    8세기 4대 도시(콘스탄티노플·바그다드·장안·경주)의 상징물로 꾸민 공간,
    장보고공연장·석빙고·비말지·족욕장 등이 있다. 그리고 신라 유물을 모티브로 꾸민
    놀이 공간, 신라 건축물을 복원하여 조성한 신라마을, 화랑 무예 훈련을 재현하는
    화랑공연장이 있다. 숙박 시설로 전통 양식의 호텔인 라궁(羅宮)이 있는데,
    '라궁'이라는 이름은 '신라의 궁궐'이라는 뜻이다.
  • 경주 통일전
    1977년 박정희 전대통령의 지시로 건립하였다. 전각 안에는 태종무열왕, 문무대왕,
    김유신 장군의 영정이 모셔져 있으며, 회랑에는 통일을 향한 격전의 현장을 보여주는
    기록화를 길게 전시해놓았다. 이밖에도 넓은 경역 곳곳에 삼국통일기념비와 태종무열왕,
    문무왕, 김유신 장군의 사적비 등이 세워져 있다. 호국영령의 뜻을 기리는 장소여서
    초·중등학생들의 통일이념 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남산 칠불암과
    전망대로 오르는 등산로도 설치되어 있다.
  • 포석정
    경상북도 경주시 배동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정원 시설물. 돌로 구불구불한 도랑을
    타원형으로 만들고 그 도랑을 따라 물이 흐르게 만든 것으로서, 신라귀족들은
    이 물줄기의 둘레에 둘러앉아 흐르는 물에 잔을 띄우고 시를 읊으며 화려한 연회를 벌였다.
    기록상으로는 880년대에 신라 헌강왕이 이곳에서 놀았다는 것이 처음 나타나나,
    7세기 이전부터 만들어졌던 것으로 추 측된다. 927년 11월 신라 경애왕이 이곳에서
    화려한 연회를 벌이던 중 뜻하지 않은 후백제군의 공격을 받아 잡혀죽었다고 전하는 곳이다.
  • 안압지
    월성(月城)의 북동쪽에 인접하였다. 《삼국사기》 674년(문무왕 14) 조(條)를 보면 궁성 안에
    못을 파고 산을 만들어 화초(花草)를 기르고 진금이수(珍禽異獸)를 양육하였다고 하였는데,
    안압지는 바로 그때 판 못이며 임해전(臨海殿)에 딸린 것으로 추정된다. 1974년 이래의
    준설공사와 고고학적 조사에 의하여 주목할 만한 유구(遺構)와 유물이 발견되었다.
    동서 200m, 남북 180m의 구형(鉤形)으로 조성되었는데, 크고 작은 3개의 섬이 배치되었다.
    연못 기슭과 섬에 실시된 호안공사(護岸工事)는 정교하고 도수로(導水路)와 배수로의 시설도
    또한 교묘하다. 연못 바닥에서 출토된 유물 가운데 와전류(瓦塼類)로서는 신라 특유의
    우미(優美)한 무늬가 있는 것이 많은데, 금동보살상(金銅菩薩像)과 같은 우수한 작품이 있고,
    유존(遺存)하는 예가 드문 목조의 배, 건축 부재, 목간(木簡) 등의
    채취와 그 보존에 성공한 일은 귀중한 공적이다.
  • 경주 대릉원 일원
    경북 경주시에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이다. 본래 사적 38호 경주노동리고분군(慶州路東里古墳群),
    사적 39호 경주노서리고분군(慶州路西里古墳群), 사적 40호 경주황남리고분군(慶州皇南里古墳群),
    사적 41호 경주황오리고분군(慶州皇吾里古墳群), 사적 42호 경주인왕리고분군(慶州仁旺里古墳群)
    으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2011년 7월 28일 문화재청이 역사성과 특성을 고려하여 경주 평야
    한복판에 서로 인접해 있는 신라 시대의 고분군을 통합하고 사적 제512호로 재지정하였다.

  • 성덕대왕신종
    국보 제29호. 경덕왕이 아버지인 성덕왕의 공덕을 널리 알리기 위해 종을 만들고자 하였으나
    완성은 혜공왕 때인 771년에 이루어졌다. 이 종은 봉덕사(奉德寺)에 달았으나 수해로 폐사된
    뒤 영묘사(靈廟寺)에 옮겼다가 다시 봉황대에 종각을 짓고 보호하였다. 1915년 8월에 종각과
    함께 박물관으로 옮겼고 국립경주박물관이 신축 이전됨에 따라 이 동종도 지금의 국립경주박물관
    경내로 이전되었다. 일명 봉덕사종·에밀레종이라고도 한다.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최대의
    거종(巨鐘)으로서 제작 연대가 확실하고 각 부의 양식이 풍요 화려한 동종의 하나이다.
    상원사 동종(국보 제36호)과 함께 통일신라시대 범종을 대표한다.
  • 첨성대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31호로 지정되었다. 경상북도 경주시 인왕동에 소재하며
    높이 9.17m, 밑지름 4.93m, 윗지름 2.85m이다. 밑에서부터 4.16m 되는 곳의 남쪽
    허리에 한 변이 1m인 정사각형 문이 달려 있다. 모양은 원통형으로 남쪽 문에
    사다리를 걸었던 자리가 있다. 30cm 높이의 돌 361개 반을 사용하여 상층부와
    기단을 제외한 27단을 쌓아 올렸다.(전체 돌의 개수는 401개) 내부는 제12단까지
    흙이 차 있고, 제19단에서 제20단까지와 제25단에서 제26단까지의 두 곳에
    정(井)자형 장대석(王:재위 632~647) 때 건립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문무대왕릉
    사적 제158호. 대왕암(大王岩)이라고도 한다. 삼국통일을 완수한 문무왕(文武王)은
    통일 후 불안정한 국가의 안위를 위해 죽어서도 국가를 지킬 뜻을 가졌다. 그리하여
    지의법사(智義法師)에게 유언으로, 자신의 시신(屍身)을 불식(佛式)에 따라 고문(庫門)
    밖에서 화장하여 유골을 동해에 묻으면, 용이 되어 국가를 평안하게 지키도록(護國大龍)
    하겠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유해를 육지에서 화장하여 동해의 대왕암 일대에 뿌리고
    대석(大石)에 장례를 치렀다. 사람들은 왕의 유언을 믿어 그 대석을 대왕암이라고 불렀다.